➡高英起 デイリーNKジャパン編集長/ジャーナリスト 8/24(월)
➡고영기 : 데일리(Daily) NK 재팬(Japan) 편집장/저널리스트(journalist) 【写真】金与正朝鮮労働党部長(写真:代表撮影/ロイター/アフロ) 【사진】김여정 조선노동당부장(사진 : 대표촬영 / 로이터(Reuters) / 아플로(Aflo Co.,Ltd) 北朝鮮が、李在明政権の対北融和策を容赦なくあざ笑っている。金与正朝鮮労働党部長は、米韓合同軍事演習の縮小を受け、韓国を「戦争ごっこを終えなければならない哀れな境遇」と形容。「一度の合同演習縮小で国家の安全保障が揺らぐ国が韓国だ」と皮肉った。 북한이 이재명 정권의 대북 융화책을 용서 없이 조롱(嘲弄)하고 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장은 한미합동 군사연습의 축소를 겪는 한국을 「전쟁놀이를 끝내야 하는 애처로운 처지」라고 형용(形容). 「1번의 합동 연습 축소로 국가 안보가 흔들리는 나라가 한국이다」라고 비꼬았다. さらに韓国軍を「指揮権を主人に預けた操り人形軍隊」と罵倒し、米韓関係についても、韓国が「惨めな状態」に陥ったことで「主従関係の構図が鮮明になった」と決めつけた。 더군다나 한국군(韓国軍) 「지휘권을 주인에게 맡긴 꼭두각시 군대」라고 매도(罵倒)해 한미 관계에 대해서도 한국이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으로 「주인과 종놈의 관계 구도(構図)가 선명해졌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矛先は李氏本人にも向けられた。融和姿勢を示しながら米韓同盟を維持する李氏の姿勢を「内外で異なる二重の言動」と非難し、「この機会に自分の立場を学び、生存の答えを見つけてはどうか」と挑発した。李政権は南北間の緊張を下げ、対話への入口をつくろうとしてきた。しかし北朝鮮の答えは、談話、ミサイル、再び談話という3日連続の対外攻勢だった。 창끝(spearhead)은 이(李) 씨 본인에게도 향했다. 융화자세를 보여주면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 이(李) 씨의 자세를 「안팎(內外)이 다른 이중(二重) 언동」이라고 비난하며 「이(this) 기회에 자신의 입장을 배워 생존의 답(答)을 찾아내는 것은 어떨까」라고 도발했다. 이(李) 정권은 남북-간(南北間)의 긴장을 낮추고 대화(対話)로의 단서(端緖)를 만들려고 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대답은 담화(談話), 미사일(missile), 다시 담화(談話)라는 3일(日) 연속의 대외(対外) 공세였다. 【映像】金与正また❝口撃❞ ミサイルの次は李在明 【영상(映像)】김여정 또 ❝비난(verbally attack)❞ 미사일(missile) 다음은 이재명 重要なのは、北朝鮮がトランプ大統領との関係には余地を残している点だ。米国の政策は批判しても、金正恩氏とトランプ氏の関係は温存する。一方、李氏には侮辱的な言葉を浴びせ、韓国の仲介役を認めない。 중요한 것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에는 여지(余地)를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정책은 비판해도 김정은 씨와 트럼프 씨의 관계는 온존(温存)한다. 한편, 이(李) 씨에게는 모욕적인 말을 퍼부으며 한국의 중재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笑顔でドアを開ければ北朝鮮も応じる――。李政権の南北政策は、なお過去の成功体験を引きずっている。しかし金与正氏が突きつけたのは、話すなら韓国ではなく米国と直接話すという「李在明外し」だ。融和を急ぐほど、韓国は交渉の主役ではなく、脇役へ追いやられかねない。 웃는 얼굴로 문(door)을 열면(open) 북한도 응한다――. 이(李) 정권의 남북정책은 더욱 과거의 성공 체험을 질질 끌고 가고(drag) 있다. 그러나 김여정 씨가 거칠게 들이댄 것은 말하자면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직접 대화한다는 「이재명 제외(leave out)」이다. 융화를 서두를수록 한국은 협상의 주역이 아니라 조역(助役)으로 쫓겨날 수 있다. ▶高英起 デイリーNKジャパン編集長/ジャーナリスト ▶고영기 : 데일리(Daily) NK 재팬(Japan) 편집장/저널리스트(journalist) 1966년 7월 10일 오사카(大阪) 출생.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 2세(二世), 오사카(大阪) 조선고급학교를 졸업 후 간사이 대학(関西大学/Kansai University) 경제학부에 진학. 재학 중에는 재일조선인(在日朝鮮人)의 학생조직 「재일본조선유학생동맹 중앙본부(在日本朝鮮留学生同盟中央本部)」에 가담하면서 일본의 신좌익(新左翼), 과격파 등 운동 현장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신좌익(新左翼)을 테마(theme)로 하는 논픽션(nonfiction)을 통해 북한이야말로 스탈린주의(Stalin -ism)라고 알게 되고, 당시의 김일성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후 반(反) 스탈린주의(Stalin-ism)를 내세운(put forward) 신좌익에 매력을 느끼고 참가했지만,「둘 다(both) 내용은 동일(同一)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후에는 보도자료(press release or story) 작성에 참가하고 있었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 대학(延边大学/Yanbian University)에서 유학하고, 그 후에 1991년 4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북조선의 조선사회과학원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이영화【李英和➡간사이(関西)대학 교수】로부터 북한의 굶주림 실체와 인권침해의 실정(実情)을 듣고 1993년 이영화(李英和)와 함께 「구(救)하라! 북한의 민중 긴급 행동 네트워크 (RENK➡Rescue The North Korean People Urgent Action Network)를 결성했다.